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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11월의 대한민국은 혼돈과 탄식 그리고 부끄러움이 가득하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을까 더듬어 보다가 임진왜란이 떠올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 oblige /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왕이었던 선조와 그의 신하들의 모습은 사회 지도층이라 볼 수 없었다. 백성들을 내팽겨쳐두고 자신들의 안위만을 살피는 모습에 백성들은 왕궁을 불태우며 분노했었다. 전쟁중에도 왕은 무능한 모습과 책임전가 대상을 찾을뿐 이었다.


7년 전쟁이 끝난후에는 더 처참하다.


┌ 선조는 임진왜란 7년전쟁 때 공을 세운 공신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우선 선무공신이다. 선무공신은 전쟁때 전장에서 공을 세운 무인들에게 내리는 공신이었다.

다음으로 호성공신이 있다. 호성공신은 전쟁때 선조의 피란을 수행하던 자를 중심으로 내렸다.


먼저 선무공신이다. 1등급은 3명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우리의 기대대로 이순신이 무난히 선정되었다. 그 다음은 권율이 선정되었다. 이제 1등급의 한 자리만 남았다. 마지막  남은 한 자리는 누구에게 갔을까? 김시민? 곽재우? ... 그 주인은 원균이었다.

이제 2등급을 정해야 한다. 2등급은 5명이다. 김시민, 이억기 등으로 정해졌다. 마지막 3등급이다. 1,2등급 보다 많은 10명이다. 그들은 이순신(동명이인), 기효근, 이운룡 등이었다.


선무공신 1,2,3등급 합계 18명 이것으로 무인들에 대한 포상이 끝이다. 


이제 선조를 도와 피란길에 올랐던 이들에 대한 호성공신에 대한 전공도 시행해야 한다. 그들도 전쟁중에 왕을 보필하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었다. 당연히 보상이 있어야 한다.

우선 1등급은 2명이다. 선무공신인 1등급이 3명이었으니 무인보다 적은 수가 배정되었다. 어차피 전쟁으로 인한 공신의 배정이므로 전쟁 수행 면에서 볼 때 그 수가 무인보다 당연히 적어야 한다. 호성공신 1등급은 이항복, 전곤수 였다.


다음의 2등급이 문제이다. 31명에 달한다. 유성룡, 이원익, 윤두수 등이 선정되었다. 선무공신 2등급이 5명인데 비해 선조를 수행한 호성공신은 그 6배가 넘는다. 김시민, 이억기가 선무공신 2등급인데 그들과 같은 등급이다. 그래도 선조 마음이니 할 말은 없다.


마지막으로 3등급이 남았다. 3등급은 무려 53명이다. 정탁, 허준 등이다. 그 중에는 내시가 24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선무공신 3등급이 10명이었는데 이에 비해 대단한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선조 마음이라고 해도 국가의 일이다. 심해도 너무 심했다.


결론적으로 선무공신은 총 18명이고, 호성공신은 총 86명이다. 무려 4배가 넘었다. 아마도 선조는 7년전쟁의 승리가 그를 따라 피란길에 오른 자들 덕분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운 무인에게는 체면치레할 정도만 공신을 수여했다.


이것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 패장이지만 장렬하게 산화한 신립, 원균 밑에서 사력을 다하다가 노량해전에서 사망한 이영남 등이 3등급의 공신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또 3등급을 받은 이순신(동명이인), 기효근, 이운룡 등 역전의 장군이 내시와 같은 반열이었다. 내시라고 고생하지 않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무려 24명에 이르는 내시들이 공신을 수여받은 것도 그 도를 넘었다. 전쟁전에 정신 못 차리던 조선이 전쟁을 겪으면서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했더니 마찬가지였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선무공신에 의병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점이다. 선조를 위시한 지배 계급은 7년전쟁 때 보여준 그들의 무능으로 민초의 원망이 하늘에 닿아 있어 민초를 자극할 우려가 있는 의병 출신을 의식적으로 선무공신에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겁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점은 원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애초 선무공신을 정할 때 조정 대신들은 원균의 녹공을 2등급으로 올렸는데 선조의 지시로 1등급으로 격상되었다. 그것은 전쟁 중에 이순신을 3도수군통제사에서 파면한 선조의 치부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패장인 원균을 애초에 2등급에서 이순신, 권율과 같은 1등급으로 정한 것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똑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된다. 




┌일제시대가 끝나 후 한반도는 다시 혼돈과 치욕의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공신 선정에 의병대 출신을 철저히 배제한 것처럼 일제치하 독립투사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것도 같은 꼴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에게 요구한 조선4도 할양의 망령이 거짓말처럼 되살아나 한반도에 남북의 선이 그어졌고, 그 분단의 선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잉태했다.


한국전쟁의 끝자락에 시작된 휴전 협상의 테이블에 정작 남쪽의 자리는 없었다. 400여 년 전 명과 일본의 휴전 협상에도 조선은 끼어들지 못했다. 힘을 갖지 못한 패자의 연속된 서러움이었다.┘


아직도 한심한 작태가 우리 주위에 벌어지고 있다. 선조가 자신의 입맛대로 공신 선정을 하며 나라를 농락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나라의 녹을 먹는 자'가 국민을 위하기는 커넝 자신과 윗람의 입맛에만 몰두하고 있다. 조선의 당쟁보다 못한 '정치하는 자'의 이전투구는 극에 달했다. 정면으로 돌파해야 할 중요 쟁점은 슬쩍 빠져나가면서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자기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


진정 우려되는 점은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도덕성을 땅에 처박았다는 사실이다. '나라의 목을 먹는 자'와 '정치하는 자'까지 발밑에 둔 '가진 자'는 탐욕의 갈고리로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민초의 종자까지 싹쓸이하고 있다. 그나마 희망이 되어야 할 '배운 자'도 '가진 자'에게 구애하고 있는 현실이다.


- 김태훈.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최근 우리사회를 휩쓸고 있는 사회지도층들의 작태를 보며 떠올랐던 생각들이 너무나 잘 표현된 글이다. 우리사회에 어떤 공통의 화두가 던져저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기득권층이 나올 것이며, 사회의 도덕의식이 회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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