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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는 언제부터 '기축통화' ?






기축 통화, 基軸通貨




미국 달러 이전의 기축 통화는 영국의 파운드화 였다.




영국은 18세기에 산업혁명을 일으키면서 세계 경제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영국은 전 세계에 식민지를 만들어 '해가지지 않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차지한다. 이로써 영국의 파운드화 역시 자연스럽게 기축통화 지위를 얻는다.


하지만 파운드화는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막대한 재정 적자로 힘을 잃기 시작하자 미국의 달러화에 기축통화 역할을 넘겨주기 시작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될 무렵인 1944년7월 미국 뉴햄프셔주의 휴양지 '브레턴우즈'에서 44개국의 연합국 대표가 모였다. 회의 장소를 미국으로 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새로운 국제 권력의 구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약3주간의 회의에서 연합국 대표들은 미국 달러화에 금을 고정(1온스당 35달러)시키고 다른 통화는 달러화에 환율을 고정시키는 고정환율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한다.


명목적으로는 금본위 제도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달러본위 제도였다. 이시점에서 국제통화기금 IMF이 창립되어 1947년부터 활돌을 개시했다. 1967년에는 달러를 포함한 5개국(미국, 영국, 일본, 서독, 프랑스) 통화를 근간으로 '종이금'이라고 할 수 있는 특별 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을 도입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 패권을 쥐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냉전비용 과다 지출 등으로 미국 달러화는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받는다. 달러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지는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는 노골적으로 달러 채권을 순금으로 태환(금 교환)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의 재정 적자가 커지는 상황에서 누구도 달러가 금이나 진배없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960년대 자유 시장에서 금 시세는 1온스당 35달러라는 공식적인 평가 환율을 넘어서 있었다. 1971년 8월15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TV담화를 통해 일시적으로 달러를 금으로 바꿀 수 없다(금 태환 중지)고 공포했다. 이 금 태환 중지 선언은 닉슨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일시적 조치로 끝나지 않고, 금과 미국 달러의 오랜 결합 관계를 끊어지게 했다. 


이 시점부터 달러는 다른 수많은 화폐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지폐로 변해버렸다. 자의적으로 얼마든지 수량을 늘릴 수 있는 그런 지폐 말이다. 이제 미국 달러는 다른 통화에 대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즉 변동환율제로 바뀐 것이다.


이때부터 미국은 실물자산(금) 대신 달러 채권을 찍어냄으로써 부족한 돈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달러가 기축 통화로

통용되기까지의 주요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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